장마
김지헌
한바탕 뒤집어졌으면
화려한 전복을 꿈꿨다
꽃들이 납작 엎드렸다
굴종의 목덜미에 기총소사로 퍼붓는 저 폭포수
섣불리 고개 들었다간
가차 없는 죽음의 난장이 시작될 것이다
저 강물
야수의 얼굴 숨긴 채
등 떠밀려 그만 손을 놓쳐 버렸다
잠시라도 졸았다간 벼랑 끝
그렇게
생이란
눈 부릅뜬 채 깨어 있어야 한다고
김지헌, 「장마」, 『다정이 찾아왔다』, 2026.
<한보람 시인의 시선>
깨어 있음만이 생을 지키는 마지막 자세.
장마는 화려한 반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꽃은 몸을 낮추고, 강물은 고요한 얼굴 뒤에 야수의 본능을 감춘다. 방심은 한순간 벼랑 끝이 되고, 생은 끝내 깨어 있는 사람만이 건너갈 수 있는 시간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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