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적 고독을 젤리의 물성으로 치환한 감각적 사유 돋보여”
- 시상식은 4월 2일 2시 계산동 대구교육신문 본사 사무실에서
- 2020년 계간지 '발견'을 통해 등단을 한 실력파 작가
(대구=대구교육신문) 김하윤 기자 -
대구 교육계와 문학계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제정된 ‘대구교육신문 신인문학상’ 현대시 부문 당선작으로 한보람 씨의 <젤리가 혈관에 녹아 드는 밤>이 최종 선정되었다.
이번 당선자인 한보람 작가는 대구 출생으로, 지역의 명문 정화여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국어국문학과를 정규 입학 후 졸업한 정통 문학도이자 대구 수성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교사 출신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문학적 소양을 쌓아온 그녀는 2020년 계간지 <발견>을 통해 등단을 한 후 다시금 이번 당선작을 통해 현대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세련된 언어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교육신문 신인문학상 심사위원단은 그녀의 시를 “도시의 수직적 견고함과 젤리의 가변적 물성을 대비시켜 현대인의 불안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수작”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특히, 일상의 소품인 젤리를 씹는 행위에서 시작해 혈관 속으로 녹아드는 파멸적 달콤함과 붕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결합해낸 지점은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과 파괴력을 동시에 갖췄다고 극찬했다.
한보람 작가는 4월 2일 오후 2시 진행된 계산동 매일신문 빌딩 8층에 위치한 본사 시상식 자리에서 당선 소감을 통해 “대구에서 자라며 느꼈던 도시의 차가움과 그 속에서 버텨내야 했던 개인의 시간을 시적 언어로 치환하고 싶었다”며, “고향인 대구의 교육 전문 언론 매체를 통해 공식적인 문학상 등단을 위한 이름을 또한 알리게 되어 더욱 뜻깊고, 앞으로도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치열한 쓰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본지는 앞으로도 한보람 작가와 같은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문학적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우수한 신인상 작가 선발을 위한 등용문 역할을 지속할 예정이다. 또한 한보람 작가는 매주 금요일 <한보람의 문학 정원>이라는 연재를 대구교육신문 문학 Editor의 자격으로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보람작가의 당선작 전문과 상세한 심사평은 아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젤리가 혈관에 녹아 드는 밤"
입 안에 젤리를 가득 넣고
어둠 속에서 길을 만든다
입 속에 달콤하게 고여드는 상상
그믐달 속으로 꿈이 흘러간다
젤리만큼 간사한 것도 없지
젤리는 숨이 막힐 때마다 표정을 바뀌게 해주는 것
설탕은 혈관이 녹아가는 맛
깊이 파고 드는 빌딩에 대한 믿음은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우산
어둠 속에서 음악이 되는
고층 빌딩들의 높이가 아득하니
달은 멀어지고 기울어진다
젤리에게 의존해서 서 있는 자정
네모난 층들의 반짝임을 이어 붙이면
마음이 파도를 넘는다
내 머릿 속까지 따라온
끈끈한 젤리와
빌딩이 반듯한 설계로 지어지는 밤
청색의 손바닥 위에서
깊어진 밤의 손을 잡으면
발목이 없는 말들이 손등을 쪼고 있다
청색의 손바닥에 10 9 8 7 5
4.5 4.3 4.2 ..... 무너지는 소리
빌딩은 여전히 멀고
나는 자정이 지나도록 젤리를 씹는다
혈관이 녹아가는 한 밤의 정거장
<한보람 작가의 한줄 평>
- 시적 주체는 젤리를 씹으며 어둠을 삼킨다. 끈끈한 단맛이 혀에서 혈관으로 번져 주체를 천천히 녹인다. 자정의 차가운 빛이 입 안 깊숙이 고여 끝내 존재를 놓아 주지 않는 생활을 그렸다.
<약력(본지 공식 확인)>
대구 출생, 정화여고 졸업,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심사평]
달콤한 붕괴를 견디는 도시인의 초상
대구교육신문 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된 <젤리가 혈관에 녹아 드는 밤>은 현대인이 처한 존재론적 고독과 도시적 우울을 ‘젤리’라는 감각적 소재를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인은 딱딱하고 견고한 빌딩 숲 사이에서 말랑하고 끈적한 젤리를 씹는 행위를 대조시키며, 수직적 문명 속에 매몰된 인간의 유약한 내면을 선명하게 부각하고 있다.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이질적인 물성을 하나로 엮어내는 전이의 감각에 있다. 거대한 빌딩은 폭우 속의 우산처럼 화자를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득한 높이로 인해 달조차 멀어지게 만드는 소외의 공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거대 서사 앞에 선 개인의 무력감을 ‘젤리’라는 소품으로 치환한다. “설탕은 혈관이 녹아가는 맛”이라는 서늘한 통찰은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인공적인 달콤함이 실상은 우리의 생명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는 비극적 자각을 일깨운다.
특히 자정을 지나며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카운트다운의 배치는 이 시의 백미다. 10에서 시작해 소수점으로 쪼개지며 무너져 내리는 숫자의 나열은, 견고한 설계로 지어진 빌딩과 머릿속의 끈끈한 젤리가 뒤섞여 붕괴하는 심리적 파열음을 독자의 귀에 생생하게 전달한다. 젤리를 씹으며 버티는 자정의 시간은 도시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개인이 수행하는 가장 고독한 저항이자 처절한 의존의 몸짓으로 읽힌다.
관념에 매몰되지 않고 ‘씹는 감각’이라는 구체적 행위에서 출발하여 도시의 설계도를 다시 그려낸 이 신예의 시선은 매우 예리하고 믿음직스럽다. 당선작이 보여준 이미지의 조영 능력과 안정적인 호흡은 우리 시단에 새로운 감수성을 수혈하기에 충분하다. 달콤한 파멸의 밤을 통과해 마침내 자신만의 언어를 길어 올린 당선자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내며, 이 치열한 문학적 탐구가 앞으로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