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라도 재수 삼수 해서라도 서울 갈랍니다"…지방 의대 교수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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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도 재수 삼수 해서라도 서울 갈랍니다"…지방 의대 교수의 한탄
  • 대구교육신문 이본원 기자
  • 승인 2023.11.08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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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DB ⓒ News1 박지혜 기자
뉴스1 DB ⓒ News1 박지혜 기자

(대구=대구교육신문) 이본원 기자 = 수도권 의대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뉴스1에 따르면 "지방이랑 필수의료 인력 부족하니까 의대생을 더 뽑는다? 지방 의대 보세요. 미달이잖아요. 병원도 똑같습니다. 지방 큰 병원에 가르칠 교수도 없고, 환자도 안 와요. 이걸 그 머리 좋은 애들이 모르겠어요? 졸업하고 수련을 받아야 하는데 배울 환경이 안 되는데 누가 갑니까. 수도권 생활을 버리고 내려갈 만큼 메리트가 있느냐는 얘기죠."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필수의료 분야를 담당하는 A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지방의대 4곳이 2023학년도 입시에서 수시와 정시로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추가모집을 했다는 소식에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의대를 정말 가고 싶지만 성적이 안 맞아 지방 의대에 가더라도 다 중간에 그만두고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온다는 분석도 있지 않느냐"며 "지금 지방의 대학병원들 상황을 보면 나 같아도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한탄했다.

7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전국 의학계열 대학의 추가모집 경쟁률을 분석한 결과, 정원을 채우지 못해 추가 모집을 한 곳은 의대가 △가톨릭관동대 △단국대 천안캠퍼스 △경상대 △동국대 WISE캠퍼스 등 4곳, 치과대가 △조선대 △경북대 등 2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지방에 있는 대학들이다.

추가 모집은 수시와 수능이 다 끝난 후 정시로도 대학 정원을 채우지 못했을 때 진행하는데, '의대 열풍' 속에서도 지방에 있는 의대들이 학생을 구하지 못해 추가모집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입시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식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이런 상황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시는 6곳, 정시는 3곳에 대학 원서를 넣을 수 있는데, 미달이 발생한다는 건 여러 의대를 동시에 합격한 학생들이 빠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의대 정원이 늘면 지방의대 추가모집 인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의과대학. 2023.10.16/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의과대학. 2023.10.16/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입학을 하고 나서도 문제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대 중도탈락자(자퇴·미복학·미등록 등) 수는 179명으로 그중 139명(77.7%)이 지방 의대생으로 조사됐다.

2020년에도 전체 의대 중도탈락자 중 지방 의대 비율은 74.6%(129명), 2021년은 73.4%(149명)으로, 최근 3년간 의대를 그만두는 학생의 10명 중 7명이 지방 의대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지방 의대에 진학한 뒤 반수나 재수 등을 통해 수도권 의대에 재입학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방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전공의 지원을 할 때 서울의 빅5 병원이나 수도권 병원으로의 인력 유출도 심각한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비인기 필수과목(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외과) 비수도권 지원율은 2014년 71.8%에서 올해 45.5%로 급감했다.

서울 빅5 병원의 산부인과 교수는 "수가 가산 200% 해줄게 지방 내려가서 산과를 하라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삶의 터전을 떠나 취약지에 내려가서 일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며, 찾아오는 환자도 없고 일을 배울 스승도 부족한 지방 병원 상황을 의대생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문제는 지방에 있는 의대와 병원들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급감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의대 증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미니 의대'가 대부분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전국의 의대는 40개로 입학 정원이 80명 미만인 곳은 23개, 50명 미만인 '미니 의대'는 17곳이다. 이 '미니 의대' 중 14곳이 지방에 있다.

각 대학들이 증원을 얼마나 원하는지, 증원을 했을 때 역량이 있는지 등을 따져볼 '의학 교육 점검반'을 구성한 정부도 이를 감안해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지난 6일 열린 의학교육 점검반 첫 회의에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대 정원이 확대되더라도 현재 수준 이상의 의학교육의 질을 달성할 수 있도록 대학 현장의 상황을 다각도로 내실 있게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선 지방 의대에 교육할 환경이 조성되고 정원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각 대학병원마다 경쟁력 있는 과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결국 '안 하느니만 못한 정책'이 될 거라는 의견도 나온다.

A 교수는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도 아니고, 지금도 대구에서 서울대병원 문앞까지 가는 데 2시간 10분이면 가니 지방 환자들이 모두 서울로 진료를 보러 간다"며 "지방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가 없는데 지방대 정원을 늘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술방도 혼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의사는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선후배들과 함께 팀을 이뤄 일하기 때문에 그런 환경이 조성된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며 "지방에 각 대학병원에 경쟁력 있는 과를 만들어주고 그곳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부터 고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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