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람의 문학 정원 14] 늦어진 열반...홍용희 시인
2026-07-10 대구교육신문 한보람 문학 Editor
늦어진 열반
홍용희
스님은 세배를 받으시고는 이내 퀭한 눈으로 허공을 깊숙이 응시하였다.
스님의 말씀은 나를 향하기보다는 허공의 어딘가를 향하는 것 같았다.
문풍지가 수시로 가랑가랑 잔기침 소리를 내었으나 방 안은 훈훈했다.
하도 속이 상해 더 살아 뭐하나 싶었어
보름을 곡기를 끊고 술만 마셨지.
어둑어둑한 해거름에 공일이 찾아왔어.
아무 말도 않고 그저 머리맡에 돌아 앉아 연신 소주만 마시는 거라.
새벽녘이나 되었을까.
시시부지 일어서더니 한 마디 툭 하고는 나가는 거라.
친구 죽지 말게. 자네가 가면
내가 얼마나 적적하겠는가.
그 뒷모습이 하도 안돼 보여. 그적새야 미음을 한술씩 뜨기 시작했지.
이후 10년이나 흘렀을까. 스님의 입적 소식이 전해왔다.
지구 한 구석 허공이 멀어지면서 빛나고 있었다.
홍용희, 「늦어진 열반」, 『시산맥』 2026년 여름호.
<한보람 시인의 시선>
관계가 붙들어 둔 삶의 시간.
죽음을 향하던 사람을 다시 삶으로 돌려세운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외로움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하루를 견딜 수 있다. 늦어진 열반은 죽음의 유예가 아니라 관계가 붙들어 둔 삶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