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람의 문학 정원 2] 직업병

2026-04-16     대구교육신문 한보람 문학 Editor

(대구=대구교육신문) 한보람 문학 Editor - 

 

직업병

 

말이 오래 머물렀던 입안 가득

입 속에 녹은 눈송이들

 

꽃 피는 시간을 기다리며

응고된 숨의 모양으로 굳은 것

 

기침은 그 숨을 깨우는 방식이라고

별이라는 말은 한 번도 이루어진 적 없는 기분

 

밤이면 내려가는 길이 위태롭고

찬물을 삼켜도 식도는 식지 않는다

 

붉음, 손과 팔을 먼저 닳게 했고

인대는 잡은 것을 오래 버티다 끊어진지 오래

 

멈출 수 없는 삶의 한 가운데

어둠이 침묵이 자리를 메웠다

 

내 안에 새가 산다

안쪽에서 서로를 밀어낸 채

날개가 퇴화된

 

날개는 목 안쪽에서 무너졌을까

 

말을 지나치게 사용했던 날들의 기록이

가장 오래 남은 눈처럼

 

슬픔은 목 안쪽에서 가장 선명하다

 

* 말을 오래 품어온 주체의 목 안에서 시간은 붉다. 기침의 미세한 울림은 침묵의 결을 더듬는다. 소리의 잔향과 숨의 파편이 날갯짓으로 번지는 밤. 발화되지 못한 문장들은 눈처럼 조용히 쌓이고, 슬픔은 가장 깊은 곳에서 맑고 차갑게 오래 빛날 것이다.

 

 

한보람 작가는 대구 출생으로 정화여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본교) 국문학과를 입학, 졸업하였다. 이후 대구 수성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현재는 현대시 작가로 존재론적 고독과 도시적 우울을 테마로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문명 속에 매몰된 인간의 유약한 내면을 선명하게 부각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