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람의 문학 정원 1] 여름 빛 하나가 가만히 앉아 있다

2026-04-10     대구교육신문 한보람 문학 Editor
사진=대구교육신문

(대구=대구교육신문) 한보람 문학 Editor - 

* 시간의 발굽에 밀리는 교실에서 경쟁에 매달린 주체들은 흔들리며 숨을 고른다.

빛의 촉감과 침묵의 향기가 스며드는 복잡한 세계의 깊이. 마음은 모래알 같아 세다가 자주 잃어버린다. 우물처럼 가라앉은 사유 끝에 여름 한 조각이 조용히 앉는다. 그것은 위로이다.

 

 

여름 빛 하나가 가만히 앉아 있다

 

나무들이 수런거리다가 조용해졌다

 

문장 하나가

칠판 위에서

아직 떨어지지 못하고 있어

바람에 흔들린다, 교실은

 

그 때

성난 코끼리 한 마리가 질주한다

시간이라는 이름의 큰 발굽

 

아이들은 종이비행기처럼

잠을 보이지 않게 접는다

실마리 하나를 붙잡고

문장 속에 매달려 있어

 

연필 끝을 갉아먹고 있다

 

물 위에 작은 빛이 번지듯

연꽃 하나가 피어오르듯

아무 말도 없이 아주 작게 웃었다

 

교실은 잠깐 깊어졌다

 

여름 빛 하나가 천천히 앉아 있다
 

무심히 슬픈 계절이 지나간다

매일 조금씩 자라는 우리들의

우물을 안고 발자국처럼 깊어진다

 

한보람 작가는 대구 출생으로 정화여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본교) 국문학과를 입학, 졸업하였다. 이후 대구 수성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현재는 현대시 작가로 존재론적 고독과 도시적 우울을 테마로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문명 속에 매몰된 인간의 유약한 내면을 선명하게 부각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