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현의 詩로 만나는 세상(1) - 어머니 범종소리(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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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현의 詩로 만나는 세상(1) - 어머니 범종소리(최동호)
  • 대구교육신문 강동현 서울 취재 editor
  • 승인 2023.05.29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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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구교육신문) 대구교육신문 강동현 서울 취재 editor - 

팔공산 갓바위(사진=대구교육신문)
팔공산 갓바위(사진=대구교육신문)

 

  어머니 범종소리(최동호)

 

어린 시절 새벽마다 콩나물시루에서 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웃집에 셋방살이하던 아주머니가 외아들 공부시키려 콩나물

키우던 물방울 소리가 얇은 벽 너머에서 기도처럼 들려왔다.

새벽마다 어린 우리들 잠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연탄불 가는

소리도 들렸다. 불을 꺼뜨리지 않고 단잠을 자게 지켜 주시던,

일어나기 싫어 모르는 척하고 듣고 있던 어머니의 소리였다.

콩나물 장수 홀어머니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 가시고 콩나물 물 내리는 새벽 소리가 지나가면

불덩어리에서 연탄재 떼어내던 그 정성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잠 자주 깨는 요즈음 그 나지막한 소리들이 옛 기억에서

살아나와, 산사의 새벽 범종 소리가 미약한 생명들을 보살피듯,

스산한 가슴속에 들어와 맴돌며 조용히 마음을 쓸어주고 간다.

 

팔공산 갓바위에 기원하는 시민들(사진=대구교육신문)
팔공산 갓바위에 기원하는 시민들(사진=대구교육신문)

 

어린 시절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정상쯤에 다다르면 돗자리 수십 개가 쫘악 늘어져 있고 그곳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절을 올리고 있었다. 과연 누구에게 절하는지, 누구를 위해 절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의 마음은 모두 똑같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어머니도 내가 수능보기 얼마 전에 그곳을 찾았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분도 절을 올렸을까 궁금해진다. 가끔씩 어머니께서 내게 배푸신 사랑을 떠올려 보자면 드는 기억이다.

사실 자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부모가 부유하고 시간과 지식이 넉넉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행하는 작은 사랑들은 결코 하찮지 않다. 만일 누군가 내게 “네 어머니께선 네 입시를 위해 어떤 일을 했니?”라고 묻는다면, 고액 과외를 시켜 줬다거나 천재적인 지능을 물려줬다거나 시험 답안지를 몰래 구해주셨다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내게 매일 밥을 차려 주시고, 날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으셨고, 팔공산 갓바위에서 나의 행운을 기원했다는 것 정도면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이처럼 소소하지만 확실한 사랑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동현 군은 대구교육신문 공식 서울 취재 Editor입니다. (강동현 취재 Editor 메일 : dubks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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