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철현 기자의 눈] 17. 선(善)하게 사는 게 바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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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현 기자의 눈] 17. 선(善)하게 사는 게 바보라면
  • 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 승인 2022.12.0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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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사진=Pixabay

(대구=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에서나 그러하다면 좋으련만. 그래도 동물의 세계에서는 본능에 충실한 법칙이라도 따르는 법이다. 사람의 세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너 나 할 것 없이 속고 속이는 비열함이 없을 수가 없다. 치사하게도 그래야 사회적 생존이 가능하다. 그렇다.

이 말을 믿지 않고 부인하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극구 부인하는 뒷말에 무언가 기억 속에 찜찜함이 남아 있는 건 어찌할 것인가. 서로 모여 사는 사회가 성립되고서는 피할 수 없는 고삐 중에 핵심이 이것이다. 모든 걸 포기한 상태의 인간을 제외하고는 이 고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 같다.

그러나 착하게 사는 것이 바보란 소리를 당연히 들어야 한다면 다소 악하게 사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렇게 살면 또 행복한가. 아니 행복을 떠나 남의 잣대에 부응하여 그럴싸하게 사는 방편인가.

모든 현상에는 변화가 존재한다. 한 학급의 학생들을 떠올려 보자. 다들 성적이라는 사회적 출세 도구의 고삐에 묶여 있는 아이들이라고 그냥 가정해보자. 그중의 한 명이 진정한 교육을 외친다면 그 아이는 어찌 됐든 성적으로 줄세우는 현실에서는 낙오아닌 낙오가 되고 적어도 현실에는 그다지 적합한 인자가 되지는 못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나 반 수 이상의 학생들이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서로의 노트를 친절히 설명하며 인간적인 교우를 중요시하게 되는 계기의 사건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이건 문제가 달라진다. 바뀌는 것이다, 사회는 이런 표본 집단의 가정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단정하고 묻어버리기에는 우리의 필요악이 너무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는가?

예전에 한 번 필자는 전염의 선한 논리를 이야기 한 바 있다. 오늘 아침에 좋은 친절의 인사를 듣는 날이면 그 날 왠지 나도 친절해진다. 이런 논리가 과연 그 거대한 사회악의 구름을 일시에 걷을 수 있겠냐마는 천 리 길이 한 걸음부터란 아주 많이 오래된 경구가 오늘따라 왜 이리 목마른지 모르겠다. 나부터도 조금씩만 손해를 보고 착하되 바보란 소리를 한 번만 들어보자고 하면 무리일까? 필수적인 악으로만 점철하지 말고 딱 한 번만 바보가 되는 습관을 들이면 인생이 일거에 망할까?

각자의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우리네 세대를 살기에 무리한 가정이고 신조라 할 수 있지만 모두 바보인 사회에서 한 명의 천재는 오히려 바보일 수 있다는 말이 근원적으로 틀리지 않는다는 논리가 먹힐 수 있다면...이라는 극적인 반전처럼 사회가 인간세상이 판타지 소설처럼 바뀔 수도 있다는 믿음을 버리기 싫은 오늘날들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아직도 어딘가 남아 있는 아주 불쌍해진 의인들이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 힘든 여정을 거친 뒷맛이라도 개운할 것 아닌가.

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himmelasgeier@gmail.com>

<주 : 권철현 기자는 대구 태생으로 덕원중, 경신고를 나와 한양대(서울) 독문, 고려대(서울) 전산언어과학 석사를 졸업한 뒤 교육AI 인공언어 관련 업체 및 교육관련 업종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음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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