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세상읽기] 1. 정보의 홍수 속에 양극화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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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의 세상읽기] 1. 정보의 홍수 속에 양극화의 시대
  • 대구교육신문 박현 논설위원
  • 승인 2022.10.17 16:5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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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사진=Pixabay

(대구=대구교육신문) 대구교육신문 박현 논설위원 - 

한반도가 생긴 이래 물질적 풍요가 최고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혹자들은 말한다.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논외로 한다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나 그러했듯이 물질적 풍요는 정신적 공허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많이 가진다고 계속하여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한번 쯤은 왜 사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 생기고, 삶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들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이나 의심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물질적 풍요 뒤에 오는 공허를 스스로 헤쳐나갈 가능성이 당연히 커질 수 있다. 물론, 코로나 이후 붕괴된 자영업자들의 기본 생존권을 외면해서는 안되겠지만, 근본적인 심리 상태가 무너져서 생기는 동반자살 등의 사회적 현상을 지금의 교육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생명의 위대함, 삶의 소중함을 아무리 외쳐도 스스로 내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으면 어떤 좋은 말씀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질의 시대에 물질을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닫는다. 쉬지 않고 달려온 내 인생이 진정 자랑스럽고 가치있고 행복한 것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곤란하면 물질과 더불어 마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인문학을 교육의 한 축으로 도입하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들을 교육주체들이 해야만 한다. 물질의 양극화와 사상의 양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정 우리는 더불어 살 수 없는가에 대한 고민과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살아야 한다. 함께 잘 살아갈 방안은 도대체 없는 것인가? 필자도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싫어 선명한 흑백논리를 오히려 지지하는 편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절대적 진리를 찾는 것 자체가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고, 과거에 가졌던 확고한 믿음들조차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내가 믿고 있고 지지하는 것들을 흔들림 없이 더욱더 지지할지,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노력을 시작할지?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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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각을 한쪽 편으로만 이해하려 하면 결코 상대편을 설득할 수 없다. 정보의 홍수가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보다는 본인의 생각을 더욱더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하여 반복해서 보고 듣다보니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

모두가 공감하는 하나의 사상이나 이론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떤 사상이나 논리도 완전할 수는 없다. 종교가 달라서, 정치적 믿음이 달라서,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서, 이런저런 것들이 달라 끊임없이 분쟁과 다툼이 생긴다. 극단의 편에서 오늘도 우리는 자신들의 주장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그 중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 답을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최소한, 어떠한 경우에도 공동체가 공멸하는 길로 가서는 안되겠다.

실수투성이에 불완전하기에 인간이다. 누구도 완전해질 수는 없겠지만,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을 고민하고 경험하면서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절대악일 리는 없다.(물론, 절대선이라는 것도 아니다.) 복잡한 사회현상, 미스테리한 자연현상, 광활한 우주,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상, 그 어떤 것도 쉽게 알 수 없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인간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인다. 내가 나를 완전히 안다고 착각하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착각하지 말자. 인간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유행처럼 번진 mbti의 유형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기 위한 노력과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정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떠한 지가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에서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나만 살기 위한 방안들을 찾을 것인지, 함께 살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할 것인지? 또, 선택의 문제다. 시작할 때 작은 마음이 결국은 완전히 다른 결과들과 마주하게 된다. 쉽지 않지만, 한 걸음만 상대방 쪽에 다가가서 생각해보자. 누구도 완벽한 인생의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늘 과정일 뿐이다. 이 여정이 늘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의미있는 길이었다고 미소지을 수 있는 삶이기를 오늘도 나에게 주문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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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교 2022-10-17 22:32:31
양극화와 의미 없는 다툼으로 많이 지쳐있었는데 마음이 편해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대구탕뽈살 2022-10-17 21:13:23
생각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는 것이 수필의 정의라면, 많은 문단 속에서 공감하는 하나의 문단이나 글귀를 발견했다면, 그것 만으로도 글의 가치가 있습니다.

대구ing 2022-10-17 20:53:30
교육적인 글입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볼께요.

박정임 2022-10-17 19:44:28
타인을 이해한다는거 살수록 힘드네요
그래도 노력하는 쪽으로 가야겠죠

원장아들 2022-10-17 17:17:09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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