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철현 기자의 눈] 14. 군중적 촛불? 이제는 냉철한 상식의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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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현 기자의 눈] 14. 군중적 촛불? 이제는 냉철한 상식의 시간으로.
  • 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 승인 2022.10.07 20: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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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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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 

촛불하면 필자는 왠지 모르게 어릴 때 가 보았던 점집이 생각난다. 알록 달록한 치장이 가득한 무당의 점집. 그리고 두 개의 촛불.

나라가 온통 광우병 파동에 휩싸였을 때도, 물론 결국 지금은 명백히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판명되고 말았던 그 광우병 파동 말이다. 또한, 분명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 아픈 희생이었던 세월호 참사의 폭풍에 휘말렸을 때도 어김없이 또 다른 목적의 촛불의 음산함이 우리 사회에 깔렸다. 촛불이 운동권인가? 차라리 그렇다고 하면 명백해서 좋겠다.

어쩌면 주사파나 일련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지향하는 비밀스러운(?) 일파들이 순수 열혈 시민들의 뜨거운 애국심의 발로의 흐름을 자연스러운 정치적 모토로 바꾸어 순수한 촛불의 본질을 다른 모양으로 전환시킨 것이 아닐까? 이는 솔직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특유한 사회 운동의 모습이다. 사실성의 명백함은 시비가 가려져 결론화되어 알려지지 않고서 꼬리를 감추듯 흐릿하게 사라지고 그것을 터 잡아 일련의 세력들은 민주화라는 입바른 소리로 자신이 실체를 감춘 가면으로 성장하여 기실 한동안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고 또 다른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사회의 요직에서 또 다른 권력을 누리고 있다. 사회 기간적 요체들을 그들의 논리대로 장악하고 이념으로부터 순수한 대다수의 국민조차 이지적이고 세련된 민주 시민으로 어쩌면 스스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분명 선량하게 생각될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의 촛불문화가 더 이상 ‘그들’만의 교묘한 프로파간다 수단이 되는 것을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수구 보수라는 욕을 얻어먹을 수 있는 영역을 건드린다는 것도 필자는 알고 있다. 필자 역시 대학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화염병이 종로 거리를 놔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순수한 열정을 단 한 번도 마음으로조차도 폄훼한 적은 없었다. 민주화라는 시대의 대의라는 목표가 거의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분명했으니까.

그러하기에 지금의 민주화는 특정 집단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단연코 아니다. 화염병으로 미국대사관을 공격했다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그들의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초창기 순수성을 뒤집자는 것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과 노력만으로 모든 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독단적 선량함을 도를 넘게 주장하고 또 그 과실을 독차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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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비교적 빠르게 거친 다소 여물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사회나 변화를 겪은 여진은 있고 정착에는 많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잘못된 방향의 정착이 되고 있다면 문제가 크다. 대북문제나 사상적 편향만 들고나오면 예전의 반공 정책의 반대급부인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반(反) 반공적이다. 이런 논의와는 별개로 북한 자체가 아닌 북한의 지도부는 김일성 시대부터 줄곧 대남 적화 통일전선 전술을 지금까지 예외 없이 지속해서 시행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이것 자체를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결코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라는 집단 자체가 펼쳐온 이러한 모든 통일전선 전술이 남한 내에서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백번 양보하여 헛물만 켜는 정책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태도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것이 매번 증명되고 있음도 분명하다. 이러한 헛발질은 누구를 위함인가? 북한 주민? 아니면 통일을 향하는 한반도? 다름 아닌 북한 주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체제유지만을 꾀하는 현재의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만을 위함이 아닌가. 비상식도 도가 넘으면 미침이 된다. 미치면 치료도 쉽지 않다.

진정으로 마음에 와닿는 운동권의 새로운 슬로건을 상정해 보자면 북한의 수뇌부같은 깡패들을 구슬려 보았자 진정 동포인 북의 주민들을 궁극적으로 구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 과거 햇볕정책은 이걸 적시하며 인식했었어야만 한다. 폭력배를 다루면서 진정 인류애적 감동을 선사해서 할 일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뒷돈을 주는 처사는 삼가야 하지 않겠나. 깡패는 종국적으로 돈으로서는 진정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없고 돈으로 교화도 되질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촛불을 들었거나 드실 분들은 무엇을 위해 드는가를 민주시민답게 조금만 더 그 동인과 과정을 생각해야 아름다운 촛불양심이 빛을 발할 것이다. 이런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과정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교육의 본체이기도 하다.

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himmelasgeier@gmail.com>

<주 : 권철현 기자는 대구 태생으로 덕원중, 경신고를 나와 한양대(서울) 독문, 고려대(서울) 전산언어과학 석사를 졸업한 뒤 교육AI 인공언어 관련 업체 및 대구의 사교육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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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2022-10-08 06:12:36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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