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철현 기자의 눈] 9. 가해자는 피해자로, 피해자는 가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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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현 기자의 눈] 9. 가해자는 피해자로, 피해자는 가해자로
  • 대구교육신문
  • 승인 2022.08.0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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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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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 피해자는 가해자(?)다. 이번 호에는 몹시 어려운 글을 써 볼까 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전체적 관점에서 볼 때 살기 쉬운 세상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고안된 것이라 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세계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어려움의 근원은 무엇일까?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순리다. 그러나 그 순리를 '편리'로 바꾸고자 함에 따라서 점차 인류는 편리한 삶을 누리려는 의도와는 달리 거대한 스스로의 덫에 걸린 현재의 궁극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척박함으로부터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발버둥 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온갖 제도와 규칙틀같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주인(?)을 만들었고, 우리는 실상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이 상황에서 보자면 피해자도 훗날 또 다른 형태의 가해자가 되고 마는, 그리고 될 수 밖에는 없는 시스템이다. 그리하여 전체 피해 구조의 계속적인 고착화를 지금도 인류 스스로가 연쇄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사회의 속살은 따지고 보면 이러한 역설적 굴레의 이중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들 성공하고 싶어 하고, 성공이 곧 우리의 새로운 주인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결론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아니면 편리를 위해 서로 모여 살게 됨으로써 이루게 된 결과물이다. 역사는 잔혹하게도 재능과 미모 등 각종의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했지만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약한 상대를 눌러야만 스스로가 일어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왔고 그게 실제 생리였다는 원시진화론적 관점을 솔직히 외면할 수는 없다. 이미 모여 살게 됨으로써 발생한 인류의 이러한 아이러니한 역설적 상황은 또 다시 거꾸로 평화적인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현실이 그러하다. 이러한 생리 속에서는 어쨌든 무엇이 우리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고도의 추상적 의미 차원에서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객체간의 관계를 놓고 볼 때 소위 지배하는 층들, 즉 성공한 층들은 영속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거미줄 같은 시스템을 오랜 역사적 시간안에서 촘촘히 고안해 왔고 이는 곧 성공하지 못한 자들의 물질세계 뿐 아니라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규정된 성공한 사람들의 생각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성공해도 괴롭고 성공하지 못해도 괴롭다.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는 굴레를 끊을 도구가 필요한데 그건 바로 남을 이김으로써 취득할 수 있는 이득의 과실을 자아의 자연스러운 발견과 발현으로 대체할 수 있는 깨어 있고 조화로운 정신일 수밖에 없다. 나만이 의롭고 정의로울 수 없다. 내가 내뿜는 숨에는 남의 희생을 거름으로 자라는 모든 것을 먹은 후 소화된 기체가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득을 생각하고 살 수 밖에 없지만 최소한 그걸 알고는 있어야 한다. 현실과 삶의 이득을 좇아 떠나는 여행의 발걸음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러 가는 여행으로 바뀔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삶의 허무와 고통을 조금씩 털어내며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의 여행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himmelasgeier@gmail.com>

<주 : 권철현 기자는 대구 태생으로 덕원중, 경신고를 나와 한양대(서울) 독문, 고려대(서울) 전산언어과학 석사를 졸업한 뒤 교육AI 인공언어 관련 업체 및 대구의 사교육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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