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철현 기자의 눈] 3. 스스로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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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현 기자의 눈] 3. 스스로를 아는 것
  • 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 승인 2022.06.21 16: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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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 교실 사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대구교육신문 DB)
한 고등학교 교실 사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대구교육신문 DB)

(대구=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 

외부 환경의 현란한 지침과 시대유행에 따라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곳을 자꾸만 파고드는 노력파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적 낭비는 클 수밖에 없다. 왜 나는 안 될까? 좌절은 거기서 나온다. 그건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할 적에 사회적 병리가 된다. 돈벌이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사회가 용인하는 지위인 의사가 되기를 학생들은 많이들 원한다. 그러나 누구나 의사가 된다면 간호사는 누가 하나? 등등 이 같은 점만 주목하고 사회를 적어도 '관찰'할 줄 안다면 우리는 좀 더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우리 자신을 꿰찰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타고 난 운명을 같은 개념으로 인식했다.

언뜻 맞지 않은 동의어다. 원래 팔자를 고치는 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의, 현재도 우리 곁을 지나가는 운명을 잘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쌓음으로써 '관찰력'이 증대되고, 원래 타고난 기획된 운명 속에서 그걸 받아들이고 연이어 자신의 본모습을 점진적으로 알게 된다. 안정감 있게 노력할 줄 아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 세상 더 나아가 우주 전체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변증법적으로 바로 이것이 정말 정해진 팔자 아닌 우주의 변화가 되는 것 아닌가? 받아들일 때 비로소 변화가 되는 건 역설이 아닌가…

우리 각자의 삶은 고난의 단속적 연속이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무게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저주받았다가 아닌 우리의 그릇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꺾여 넘어지거나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병을 얻는 사람 역시도 자기의 주어진 운명과 의지를 잘 관찰하고 그 길을 가는 여정이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건 오히려 극도의 고난을 흡수하여 받아치는 반전의 묘미도 갖게 할 수 있다고 생각게 한다.

너무 어려운 철학의 이야기 같지만,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크고 작은 고난을 제대로 대처하거나 아니면 수용하는 것, 그래서 정해진 운명을 타고 난 우리를 더 나은 삶으로 심지어 전환시킬 수 있는 걸 배운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학생, 회사원, 나아가 정치인 기업인들이 이 사회에서 희노애락을 겪고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너무 애쓰지 말자는 말을 던지는 행복론가들도 있다. 그냥 구름 가듯이 가는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제대로 우리의 짖궂은 운명에 우리의 전체를 싣고 제대로 관찰하며 '실려'가야 되는 게 맞는 듯하다. 그래야 허망한 운명론을 적어도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앞뒤가 맞는 것 아닌가 한다.

 

대구교육신문 권철현 기자 <himmelasgeier@gmail.com>

<주 : 권철현 기자는 대구 태생으로 덕원중, 경신고를 나와 한양대(서울) 독문, 고려대(서울) 전산언어과학 석사를 졸업한 뒤 교육AI 인공언어 관련 업체 및 대구의 사교육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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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l56 2022-06-21 17:43:31
필력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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